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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요약]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 우리가 걷는 거리와 머무는 공간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가 본문
[도서 요약]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 우리가 걷는 거리와 머무는 공간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가
gibdata 2026. 7. 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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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 도시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힘
로마에 발을 디딘 여행객은 700년 동안 지어진 성당의 압도적 위용 앞에 숙연해진다. 파리의 에펠탑 앞에 서야 비로소 그 도시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축물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그 장소의 시간과 인간의 노력이 집약된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흔히 노예들의 고혈을 짠 산물로 인식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최신 의료 서비스와 체계적 경제 시스템이 뒷받침된 거대 사회적 결집체였다. 즉, 건축은 당대의 사회, 의료, 경제, 기술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인문학적 총체다.
‘건축은 사람이다’라는 명제는 도시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안경이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은 다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규정하며 공진화한다. 하지만 현대 도시는 기능과 효율에만 매몰되어 인간의 본능을 소외시킨 실패한 공간을 도처에 양산하고 있다. 이제 건축물을 단순한 기술적 결과물이 아닌, 인간의 삶과 심리, 권력 구조가 투영된 인문적 시선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 글은 도시의 거리를 데이터로 정량화하고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어,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의 조건을 탐색한다.
■ 걷고 싶은 거리의 비밀: 이벤트 밀도와 선택의 권력

걷고 싶은 거리는 자동차 속도가 아닌 보행자의 평균 속도인 시속 4킬로미터에 맞춘 휴먼 스케일의 체험을 동반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4평방킬로미터당 도시 블록의 코너 개수가 자동차 중심의 시카고 도심은 1,075개인 반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바르셀로나 구도심은 2,025개에 달했다. 이처럼 단위면적당 교차로가 잦은 유럽의 도시는 보행자가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교차점을 더 자주 제공한다. 수많은 교차로는 방향 선택의 경우의 수를 늘리며 걷는 행위에 우연성과 이벤트를 불어넣는다.
교차로와 더불어 거리를 따라 늘어선 상점의 출입구 빈도 역시 보행자의 선택권을 확장하는 핵심 요소다. 단위거리당 점포 출입구가 많은 상태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고 표현하는데, 이때 보행자는 매장 입구를 지날 때마다 내부로 들어갈지 계속 걸을지 주도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물리적 환경이 보행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는 시청자가 채널이 고정된 텔레비전을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대신, 인터넷 웹서핑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때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이치와 같다.
출입구가 자주 나타나는 거리는 걷는 이에게 지속적인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보행 속도를 시속 4킬로미터로 볼 때 5미터 간격으로 점포가 나타나면 4.5초마다 새로운 쇼윈도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거리의 경험 밀도를 측정한 결과 명동 거리와 신사동 가로수길은 테헤란로보다 4.5배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명동과 가로수길이 2.5초당 새로운 채널로 바뀌는 텔레비전이라면, 대형 필지 위주로 조성된 테헤란로는 11초마다 채널이 바뀌는 거리인 셈이다. 홍대 앞 피카소 거리 역시 120미터 구간 안에 20개의 출입구가 밀집해 있어 매번 다른 점포를 방문하는 다채로운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출입구가 극히 제한된 대형 건축물 주변은 보행자의 선택권을 박탈한다. 세종로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앞길은 정문이 하나뿐이어서 대사관에 들어가거나 그냥 지나치는 두 가지 경우의 수만 존재하며, 대다수는 지나치는 선택만 반복하게 된다. 반면 일제 강점기에 좁고 긴 필지로 구획된 명동은 단위거리당 15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어 가장 높은 건물 밀도와 선택권을 제공한다. 결국 걷고 싶은 거리는 대형 복합 시설보다 작은 소규모 점포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자기주도적인 선택의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곳이다.
■ 공간의 속도: 홍대 앞 거리와 테헤란로의 에너지 격차

건축물로 구획된 거리라는 빈 공간은 사람이나 자동차 같은 움직이는 개체가 들어가 운동에너지를 부여할 때 비로소 쓰임새를 갖는다. 사진작가 김아타가 사람과 자동차의 움직임을 모두 지운 채 촬영한 뉴욕 타임스퀘어 사진은 에너지가 소거된 정지된 느낌을 명확히 보여준다. 광란의 인파로 가득했던 홍대 앞 거리가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는 사람과 자동차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다른 거리처럼 느껴지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이처럼 움직이는 개체들이 공간의 성격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물리 법칙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뉴욕 록펠러 센터의 선큰가든이 여름에는 정적인 레스토랑으로, 겨울에는 움직임이 많은 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될 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듯 공간은 어떤 행위자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물리학의 운동에너지 공식을 차용한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질량이 같은 물체라도 속도가 시속 1킬로미터에서 4킬로미터로 4배 빨라질 경우 운동에너지는 8배로 증가한다. 따라서 같은 거리에 동일한 수의 사람과 차가 있더라도 속도가 다르면 그 공간이 품은 에너지는 막대한 차이를 띠게 된다. 이를 정량화하기 위해 거리를 구성하는 전체 면적에 보행자와 자동차의 평균 속도를 각각 곱해 대략적인 공간의 속도를 계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의 주요 거리를 분석해 본 결과, 가장 느린 속도를 지닌 곳은 시속 4.68킬로미터의 홍대 앞 거리였고 가장 빠른 곳은 시속 52.03킬로미터의 테헤란로로 나타났다. 이 두 거리의 속도 차이는 무려 11배에 달하며, 공간의 속도가 사람의 걷는 속도인 시속 4킬로미터에 가까울수록 보행자가 걷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거리임이 증명된다. 특히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의 속도가 유독 낮게 측정된 것은 좁은 차선 외에도 식당이나 카페가 건물 앞 주차장 부지에 불법으로 설치한 노천 데크 등이 공간의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결국 보행자는 빠른 에너지가 휩쓰는 공간보다는 적당히 파묻혀 자신의 보행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는 느린 속도의 공간을 선호하게 된다.
■ 공간과 권력: 팬옵티콘에서 펜트하우스까지의 시선 전쟁
2013년 상반기 국내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가장 비싼 곳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45층짜리 갤러리아포레로, 271제곱미터 면적이 54억 9913만 원에 팔렸다. 이 건물에서 가장 비싼 최상층 펜트하우스는 단순히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 좋아서 비싼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시선을 통해 권력을 통제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공간 권력 구조가 숨어 있다. 부자들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은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최상층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한다.
이러한 공간과 권력의 관계는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설계한 감옥인 팬옵티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감옥은 어두운 중앙 감시탑을 중심으로 밝은 죄수들의 방이 둥글게 배치되어, 간수는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다. 처음 몇 번의 처벌을 겪은 죄수들은 간수가 자리에 없을 때조차 언제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75년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이 구조가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현대인의 삶과 유사하다고 분석했으며, 저자는 공간이 지닌 이 역학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소수의 시선으로 다수를 통제하는 원리는 도시 계획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절대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지도자들은, 19세기 파리를 재개발할 때 시민을 통제하기 쉬운 방사형 도로망을 구축했다. 모든 길이 개선문 광장을 향해 모이도록 설계함으로써, 시민들이 봉기하여 쏟아져 나와도 개선문 위에 대포 몇 개만 설치하면 적은 군대로도 큰 무리를 쉽게 제압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방사형 구조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구조인 격자형 도로망과 달리, 방사상의 중심점에 서느냐 주변부에 서느냐에 따라 권력이 차등적으로 분배되는 특징을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도 시선을 통한 권력의 차등은 일상적인 건축 공간 곳곳에 존재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동 간 거리가 가까울 때, 한 층이라도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은 건너편 낮은 층의 거실을 쉽게 내려다보며 감시탑의 간수와 같은 권력을 누리게 된다. 최고층의 펜트하우스가 상징하듯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관찰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자 한다. 결국 건축가가 건물과 도시의 공간 구조를 디자인하는 것은 향후 수백 년간 이어질 인간 사회의 권력 창출과 재분배를 결정짓는 중대한 작업이다.
■ 현대 도시의 상실: 사라진 골목길과 마당의 기억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계획안은 파리 도심을 고층 아파트로 리모델링하고 건물 사이에 공원을 조성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 역시 이를 모방하여 화려한 공원 조경을 자랑하지만, 실상 거주민들은 도시의 중요 요소인 길과 골목을 잃었다. 과거 도시에서는 골목을 따라 이웃집을 찾아갔으나, 현대 아파트에서는 태양광 대신 형광등이 켜진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의존해 이동한다. 저자는 아파트가 지배하는 현대 도시 공간이 상실한 결정적인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거 대문 앞 골목길은 세대 간 교류가 일어나는 공동의 거실이자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었다. 저자가 1970년대 초등학교 하교 길에 돌을 차며 걷다가 대문 앞 길가에 앉아 앞집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를 보았던 일화는 이러한 공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은 좁은 골목에 모여 축구와 야구를 했고,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자연스레 모여 대화를 나누며 소통했다. 그러나 마이카(my car) 시대가 도래하면서 연못과 꽃이 있던 마당은 시멘트로 덮여 주차장이 되었고, 아이들이 뛰놀던 골목길 역시 자동차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골목길과 함께 사라진 단독주택 마당의 부재는 거주자들이 100평짜리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보다 30평짜리 주택을 심리적으로 더 넓게 느끼게 만든다. 아파트 거실의 풍경은 고정되어 있지만, 정방형의 마당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고추 말리기나 바비큐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일어나는 역동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아파트에 남은 외부 공간인 발코니는 폭이 1.5미터도 되지 않아 한 방향을 바라보는 제한적인 행위만 허용한다. 이처럼 마주 앉아 소통할 수 있는 마당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변화가 없는 아파트 실내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이벤트와 화면이 바뀌는 텔레비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 도시의 진화와 재생: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도시

도시는 기계처럼 고정된 부품으로 조립된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 낡은 세포를 교체하며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가 순환계와 신경계를 갖춘 척추동물로 진화했듯, 역사 속 도시들도 인프라를 발달시키며 진화해 왔다. 고대 로마는 생명체의 혈관에 해당하는 상수도 네트워크를 구축해 막대한 물을 공급하며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오스만 시장의 주도하에 사통팔달의 방사형 도로망과 하수도 설비를 갖추며 신경계가 발달한 다음 단계의 도시로 도약했다.
20세기에 들어선 뉴욕은 척추 신경계에 비유될 수 있는 전화 통신망을 구축함으로써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선도 도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성장한 도시는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과 전성기를 거쳐 쇠퇴기를 맞이하며, 죽은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의 과정을 겪는다. 저자는 이처럼 도시가 겪는 생애 주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유기적 재생의 대표적 사례가 뉴욕 맨해튼 서남쪽의 하이라인 공원으로, 수십 년간 방치되었던 고가 철도가 두 시민의 보존 운동을 통해 공중 공원으로 탈바꿈하며 주변 건물 재생에 큰 시너지를 냈다.
뉴욕의 소호 지역 역시 2차 산업 쇠퇴로 비어있던 공장 건물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유입되면서 갤러리와 자본이 모여드는 재생의 과정을 보여준다. 비록 임대료 상승으로 예술가들은 1990년대 후반 첼시 지역으로 밀려났지만, 이 과정은 도시가 스스로 정체성을 형성하며 진화하는 모습을 증명한다. 서울의 북촌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중정형 한옥들이 2000년대 이후 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게스트하우스나 공방으로 용도를 변경해 살아남았다. 이는 도시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맞서 하드웨어를 유지한 채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며 생존하는 유기체적 재생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 시사점: 더 나은 도시와 행복을 위한 인문적 제언
건축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딛고 선 세계의 구조를 자각하는 일이며, 이는 시민의 권력이자 행복의 근거가 된다. 스위스나 핀란드가 화폐에 르 코르뷔지에나 알바 알토를 새겨 건축을 지식산업이자 문화로 존중하듯, 우리 사회도 건축이 지닌 무형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건축 설계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국가의 정신을 담아내는 고도의 문화적 행위다.
도시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아파트 구조를 탈피하고, 학교 운동장을 담장 없는 광장으로 활용하며, 보행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거리를 요구해야 한다. 건축물이 만드는 리듬과 멜로디를 이해할 때, 비로소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 중심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진리는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인문적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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